‘종북몰이’로 야당 공격하고 정부여당 구하기에 나선 족벌언론

신문 사설은 특정 사안 또는 쟁점에 관해 독자들의 생각, 신념,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공적 담론이다.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나 이념을 드러낸다. 소속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은 독자들에게 언론사의 입장이나 이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예시와 은유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과장도 서슴지 않는다. 일종의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특히, 신문 사설은 사회 구성원의 의식의 흐름과 행동 양식 등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담론 권력의 핵심이라 규정할 수 있다. 신문 사설은 해당 언론사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문 사설은 일반 뉴스 보도와 차원이 다르고 무게가 다르다. '존중받는 노동과 신뢰받는 언론'을 지향하는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2024년부터 담론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이달의 나쁜 사설’을 매월 선정·발표하고 있다.

언론의 기본을망각한 보수신문의 '종북몰이' 프레임

우리나라 주요 신문들은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비롯한 주요 선거 때마다 사실상 특정 정당의 기관지 노릇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 <한겨레>가 입수한 1997년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사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의 대화 내용 녹취록에는 <중앙일보> 등 일부 신문이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노골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확인해주는 대목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중앙일보 정치부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부터 대선 때까지 10여차례 보고서를 작성해 이회창 후보의 선거 전략 수립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22대 총선에서 ‘정권 심판’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정부여당이 위기에 놓이자 보수신문은‘종북물이’를 통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였다. 이들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종북 프레임’을 통해 야당을 공격하고 여당을 측면 지원하고 나섰다. 동시에 올해부터 국가정보원 (이하, 국정원)에서 경찰로 넘어간 대북 수사 권한을 국정원에 다시 넘겨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한 달 동안 지속했다.

주권자의 최대 권리 행사인 국회의원 선거와 북한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야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들 중에 ‘간첩’이 있단 말인가? 반국가단체에 대한 정부의 수사 또는 수사 발표가 있었단 말인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통해 ‘종북 프레임’ 여론을 확산시키려 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을 망각한 행위이다. 언론은 사실에 기초해 보도와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여론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언론사 논설위원의 과대망상에 기반한 상상이나 추측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포문은 세계일보와 중앙일보가 열었다. 중앙일보는 3월 7일자 ‘국가 근간 흔들 위기의 총선판’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진보당·새진보연합·연합정치시민회의를 끌어들여 종북 논란에 휩싸인 인사들을 당선 안정권에 배치했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책임을 물었다.

같은 날 세계일보는 ‘이재명, 친북세력·조국과 손잡고 중도층 마음 얻겠나’라는 사설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 대표가 국민 무서운 줄 모른다면 총선에서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 곳곳에서 활개치는 간첩?

세계일보는 다음 날(3월 8일) 사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3월 7일) 총선 승리를 전제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회복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고 통과시킬 것”이라며 대공수사권 부활을 거론한 배경으로 “이재명 대표가 자기가 살기 위해 통합진보당 후신 종북 세력에 정통 민주당을 숙주로 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인용했다. 세계일보는 “이 대표가 위성정당을 통해 종북세력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고 민주당 내에도 친북 성향 인사들이 상당수 공천 받은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고 맞장구를 쳤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월 국가정보원법을 개정해 대공수사권을 올해부터 경찰에 넘기도록 조치한 이후 윤석열 정부가 간첩 정보 수집 기능은 국정원에 두도록 시행령을 바꾸긴 했으나 여전히 미봉책이라며, “지난 수년간 국정원의 대공수사가 소홀해진 사이 간첩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활개 치고 있다”고 세계일보는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그러나 간첩들이 활개치고 있는 상황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엉뚱하게도, “잇따르는 북한의 전방위 해킹과 미래 사이버 보안 강화를 위해서라도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을 공론화할 때”라는 문장으로 사설을 끝맺었다.

'대공수사권부활', 반헌법적 발상

매일경제도 3월8일 “종북세력 대거 국회입성 눈앞, 국정원 대공수사 복원 서둘러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종북몰이에 가만히 있을 조선일보가 아니었다. 3일을 관망(?)한 조선일보는 3월 11일 “종북세력 국회 진입으로 더욱 시급해진 대공 수사권 복원”이란 제목을 달아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복원을 ‘기정사실화(foregone conclusion)’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대공 수사권 복원을 바라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역시 조선일보!’라는 탄성이 나올 만하다.

다음 날인 3월 12일 중앙일보는 “반미·반국가 세력의 ‘비례대표 1번’ 철회돼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중앙일보에게 ‘미국’이 우리나라에 성역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중앙일보 사설의 주장은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조차 ‘반미주의자’의 굴레를 씌우는, 위험천만하고 반 헌법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정책’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가 된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The First Amendment)는 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종교와 사상, 집회의 자유까지 같은 조항에 담고 있다. 왜 그럴까?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전제하지 않는 언론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존재하거나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리영희 선생의 해석이다. 미국은 이 수정조항을 233년 전인 1791년에 채택했다.

다시 우리 족벌신문들 사설 제목들을 더 훑어보자.

서울신문: 종북인사 국회 무혈 입성, 이게 국민 뜻인가(3월12일)

세계일보: 피고인, 친북인사 대거 공천…이런 비례대표제 왜 필요한가(3월20일)

서울신문: 친북·반미에 범법자까지…野 요지경 비례대표(3월20일)

한국경제: 친북·범죄 혐의자에 폭력 전과자까지 진흙탕 된 비례대표(3월20일)

조선일보: 1% 지지 종북정당에 최대 5석 주고 정책까지 연대하는 민주당(3월21일)

매일경제: 친북세력 국회 입성 도우면서 “전쟁 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이재명(3월25일)

보다 못한(?) 경향신문이 나섰다.3월 27일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급해진 여권, 일제히 ‘색깔론’ 꺼냈다”는 제목으로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인요한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 등의 발언을 전했고, 같은 날 사설은 <“반국가세력”과 “이념전쟁”, 여권 또 색깔론 회귀하다>는 제목으로 여권의 이념공세를 경계했다.

'빨갱이' 사냥이 반복되는 이유

한겨레성한용 선임기자의 3월 12일칼럼제목처럼 “가짜 보수의 지긋지긋한 빨갱이 사냥”은 왜 선거 때마다 반복될까?첫째, 우리나라 족벌언론(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매일경제 등)과 재벌언론(한국경제, 문화일보)은 정치적인 지형에서 수구·보수적인 입장이나 태도로일관해 왔다. 특히 중요한 선거 국면에서는 특정 정당이나 대선 후보의 선거 캠프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면서도, 정작 사설이나 사고(社告) 등을 통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의 유력 언론(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과 극단적으로 다른 점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특정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뉴스 보도에서는 사실(fact)에 근거해 균형과 형평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둘째, 족벌·재벌언론의 이런 지극히 모순적인 정치적 태도는 족벌언론과 재벌언론을 왕국처럼 대대손손 소유 혹은 지배하고 있는 대주주와 가족·경영진의 입장이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족벌·재벌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watchdog)이나 제4부(The Fourth Estate)가 아니라, 권력과 재벌의 애완견이나 마름에 불과하다.

워싱턴포스트오너이자 발행인이었던 그레이햄(Katharine Graham) 회장은 “좋은 신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좋은 소유주를 갖는 것”이라고 설파했고, 이런 원칙을 워트게이트 사건 등의 보도에서 정부 위협에 굴하지 않고 몸소 실천했다.

셋째, 집권당인 국민의힘 세력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족벌·재벌언론 입장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실패하고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가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할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족벌·재벌언론과 사주들, 그리고 기자를 포함한 구성원들은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층으로 종부세와 법인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취임 초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재벌언론의 주문대로 국정을 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언론이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물가 인상과 내수침체를 동반한 경제 악화, 서민들의 피폐한 삶, 부자 감세와 법인세 인하 등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 남북한 긴장 고조와 전쟁 가능성 등민심이반에따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북몰이는 이들 언론이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고 국면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인지 모른다. 앞뒤를 재거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우리 유권자들과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더 이상 시대착오적이고 어설픈 종북몰이 사설에 놀아날 유권자는 많지 않다. 족벌언론이 4·10 총선 결과에 벌써부터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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