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칼럼] 그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바꿔야 한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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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 유시민 작가는 지난 4월 10일 MBC 총선 개표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 왔던 국정 기조를 거의 바꾸지 않고, 단지 바꾸는 시늉 몇 가지만 하는 정도로 그냥 밀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산더미 같은 정치개혁과 사회개혁 과제들’ 제목의 <시민언론 민들레> 칼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총선으로 심각한 경고장을 받았지만, 지금까지의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기존 통치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예상을 재확인 하듯, 4월 16일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총선 메시지에는 사과와 반성은 전혀 없고, 변명과 책임회피만 가득했다. 채 해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 문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대통령 자신은 올바른 정책을 펴왔는데, 국민이 대통령의 충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투의 푸념이었다. 대통령은 옳았고 국민이 틀렸다는 말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 어디 있던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격언을 우리는 매일 다짐하며 살지만 말이다. 매일 걷는 길을 일부러 똑같이 걸으려 애써도, 남은 자취는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변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는 사람은 계속 생길 것이다. 교육이나 종교는 “그래도 사람은 변한다”는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도 변했고 부처도 변했다. 예수는 세상을 멍하니 관망만 하며 살다가, 생애 말년에 세상을 뒤바꾸겠다고 용기있게 나섰다. 바울은 예수 운동을 박해하다가 예수 운동을 홍보하는 사람으로 확 변신했다.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나이 60 넘어 비로소 회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돌 꽃 나무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크게 소리치리라

로마인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파스퀴노(Pasquino) 조각상이 있다. 공통년 이전 3세기에 어느 무명 인사가 만든 이 조각상은 권력층과 귀족들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말을 한다고 소문이 났다. 하고픈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었던 하층민들이, 언제부턴가 밤에 몰래 와서, 하고 싶은 말을 조각상에 써붙이고 갔던 것이다.

만일 오늘 사람들이 밤에 몰래 와서 하고 싶은 말을 쓴 종이를 광화문 어느 동상에 붙이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할까. 김건희 여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할까.

199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문학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약자의 처지에서 세상을 보기로 작정했고, 나의 시, 나의 소설은 언제나 그런 입장을 줄곧 견지했다. 이것이 나의 문학이다.”

귄터 그라스 못지 않은 문인, 지식인, 촛불 시민들이 대한민국에 왜 없겠는가. 문인, 지식인, 종교인들이 침묵한다면, 한반도의 모든 돌과 꽃과 나무들이 벌떡 일어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크게 소리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변할 수 있다

아무리 변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해도,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조금이라도 변하기 마련이다. 특히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와 그런 시기에는 더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살고 싶으면 변해야 하고, 변해야만 그는 생존할 수 있다. 변하되 자신의 결단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시기에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을 바꾸려고 잔꾀를 부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바꾸려 애쓸 것인가. 국민들은 총선 투표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통령 자신을 크게 바꾸라고 분명히 요구했다. 다른 살 길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혈액형이나 염색체를 바꾸지 못하지만, 국정 기조를 확 바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회개할 수 없는 사람은 지구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는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80년대 어느 성탄절에 윤석열 대통령은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윤석열 대통령이 미신이나 주술에 빠졌을까? 그런 낭설과 헛소문을 믿고 싶지 않다. 하느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지옥이 얼마나 끔찍한지, 윤석열 대통령도 모르지 않으리라. 하느님 심판에는 사면 복권도 없고, 뇌물도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국민이 대통령을 바꿀 것이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민주주의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 회복 없는 민생은 없다. 민주주의 없는 빵은 인간의 품위를 비참하게 추락시킨다. 민생이냐 민주주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민생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 회복이 지금 최우선 과제다. ‘민생·협치보다 민주주의 회복이 우선’이라는 <시민언론 민들레> 강기석 상임고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2000년 전 유다교 대사제 가야파는 예수를 두고 사람들에게 예언했다. “당신들은 그렇게도 멍청합니까?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요한복음 11,49-50). 윤석열 대통령은 요한복음의 저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고 나는 권하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 기조를 당장 바꾸지 않는다면, 그는 감옥 같은 대통령직에서 국민들에 의해 곧 해방 당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그를 강제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이 모두 망하는 것보다 윤석열 대통령 한 사람이 망하는 편이 훨씬 낫다.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태도를 보면,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보다 대통령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더 옳은 듯하다. 착한 백성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